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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생각

한국 대선과 그뤼네부르크 공원의 기억 나무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다. 코로나를 핑게로 집콕을 하니 몇 일 동안 바깥바람이라곤 창문만 잠시 열어서 쐴 뿐이다. 이제는 바람도 좀 쐬고 싶었다. 조금 여유를 부리며 나가면 발길가는 곳이 바로 그뤼네부르크 공원이다. 

 

그뤼네부르크 공원은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즐길 수 있는 녹지이다. 이렇게 큰 시립공원이 시내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축복이며 또 이 부근에 사는 내게도 축복이다. 그러나 이 공원이 원래 로스차일드 가의 성이 있던 곳인데 유태인들에 대한 혐오를 이용하여 정치권력을 휘두른 나치 히틀러 일당이 헐값에 강제매입한 땅이라 생각하면 이 공원에 눈부신 봄빛이 마냥 다사롭지만은 않다. 

하기야 우리가 누리는 것 중 어느 한 톨 모래알이 본시 우리 것이던 적이 있었을까? 단지 사회적 합의 혹은 계약이란 이름 아래 마치 우리 것인 줄 잠정결론을 내리고 살 뿐이다. 그 잠정결론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확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다. 우리가 누리는 동안 언제 어디서 다른 이들의 자유와 평화가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는지 상상도 할 여유 없이 살지 않는가?

 

이 공원에는 기억 나무가 하나 서 있다. 어느날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다 발견했다. 소리 소문 없이 서 있는 나무 아래에 안내문이 있다. 끔찍한 역사가 적혀 있다. 칠레의 아옌다 정부가 군사 쿠데타로 파괴된 후 1973년부터 1990년까지 17년간 사라지거나 살해당한 사람들에 관한 기억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그뤼네부르크 공원. 이곳 한 모퉁이에 칠레 군부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며 심은 기억 나무가 있다. 

 

한국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은 지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신임하고 검찰개혁을 하라고 검찰총장을 시켰지만, 조국 법무부의 가족에게 각종 불명예를 덮어씌우며 과도한 수사를 벌였다. 과거 권력의 시녀였던 검찰이 민주 정부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니 이제는 검찰왕국을 꾸리려는 흑심을 시간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보인다. 법무부 장관 지휘권 못 받겠다고 쌈만 하다가 사표 내고 나와서 대선 후보가 된 정치신인이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그에게는 꿈일 줄 모르지만 시민들에게는 악몽이다. 그간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이 벌여온 대국민사기극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백주대낮에 취조실 속 검사의 제스처로 국민을 위협한다. 어제는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부실 대출을 윤석열이 덮었다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나왔지만, 이 또한 공작이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주장은 증거가 없어도 진실이고 상대의 주장은 증거가 있어도 공작이라는 이 후안무치함은 민주주의의 레드라인을 넘어도 한창 넘었다.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기억 나무를 보며 마음이 편치 않다.

 

사전투표 참여율 36,9%. 그것이 모두 누구에게 가는 표인지는 모른다. 아직 3월 9일 투표가 남았다. 모두 현명한 판단을 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이재명을 신뢰하고 지지한다. 

 

2022. 3. 6

프랑크푸르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