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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안한 외출] 무거운 주제 따뜻한 호흡

무거운 주제 따뜻한 호흡

김철민 감독의 <불안한 외출>


몇 가지 질문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엄마 아빠가 결혼할 때 아빠는 지명 수배자였다. 아이들은 아빠의 얼굴을 사진을 통해 배웠다. 아빠가 체포되어서 감옥에 들어간 후 아이들은 철창 너머의 아빠를 만난다. 아빠가 석방된 후 엄마가 감옥에 간다. 엄마 아빠는 도대체 무슨 짓을 했을까?

엄마나 아빠가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거액 세금을 빼돌린 것도 아니고 노동자를 착취한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니다. 

아빠의 이름은 전 한총련 의장 윤기진 민권연대 대표. 엄마의 이름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 남측 학생대표로 북을 방문하여 화제가 되었던 황선. 남북간 대화와 교류가 활발하던 시절 시부모님과 평양관광을 하다가 조산기가 있어 평양에서 분만을 하여 다시 한 번 화제가 된 황선 주권방송 진행자이다. 


엄마와 아빠는 먹고 사는 일에 매진하지 않고 학생운동 때 지닌 이상을 따라 생활을 하고 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왜 엄마 아빠는 양심에 따라 살면 안 되는 것일까?


엄마 아빠는 결혼식을 할 때 피로연을 여유있게 치룰 수 없었고 결혼하고 나서도 한 집에 살 수 없었다. 10년 수배생활을 하던 아빠는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되고 아이들과 엄마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아빠를 만났다. 3년 살고 나왔는데 편지구절 때문에 다시 재판일정에 시달린다. 


엄마 황선은 2014년 12월 10일 전북 익산 신동 성당에서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함께 통일토크콘서트를 진행하다가 폭탄테러 대상이 된 피해자이다. 그런데 그때 그 괴상한 사건의 피해자였던 황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토크콘서트에서 행했다는(?) “북한 지상낙원 주장”은 당시 동영상만 보아도 없지만, 검찰은 지난 1월 황선을 구속하여 5개월 지나서야 보석으로 풀어주었다. 2015년 11월 말 검사의 구형량은 5년이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제3자들은 보았을 때 왜 그렇게 삶을 어렵게 사느냐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누가 감히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백번 양보하여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생각해 보아도 윤기진 황선 부부의 삶에 대해 누가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도와주지 않는 삶에 대해 입을 대기 좋아하고 훈수놓기를 좋아한다.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이 부당하게 탄압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은 부당하게 탄압하는 권력에 화살을 돌리지 않고 탄압받는 자들에게 빌미를 주었다고 꾸짖지 않았던가?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뚜렷이 서 준 사람들의 수는 넉넉하지 않았다. 


영화 <불안한 외출>

다큐창작 소의 김철민 감독은 윤기진 황선 가족의 수난사를 영화로 만들면서 국가보안법 문제를 세상에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예술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문제를 제시하고 주목하게 할 수는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영화예술을 통해서 현대한국사의 부끄러운 낙인인 국가보안법 문제를 제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는 논문이라든가 연설이 지니는 직접적인 주장 말고 뭔가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문제를 보여주는 맛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다음 내가 감독에게 한 첫마디는 “영화 재미있어요” 였다. 지난 11월 14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문화주간을 계기로 <클럽 볼테르>에서 첫 상영회를 한 후 관객들에게 물은 말도 “재미있었습니까” 였다. 

여러 사람들이 이 영화는 재미로 볼 영화가 아니라 했다. 근엄하게 꾸중을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영화의 재미에 집착한다. 낄낄거리는 재미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아픈 것은 이 영화가 그만큼 영화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며 제아무리 눈물을 흘린다 해도 영화 속 주인공들의 수난사를 당장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그러한 삶이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문제가 나오지 않으면 해결도 없으니까. 

어떤 관객은 이 영화를 천만이 보게 되면 세상이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사람들이 많이 본다고 하여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나는 직관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이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를 철창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않고 집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란다.  


윤기진의 변화 혹은 관객의 변화


우리는 영화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문제에서는 아무런 예언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확신하는 것은 사람이 변화할 가능성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윤기진은 자신이 변화하게 된 사건을 이야기한다. 충격받으며 맞닥뜨린 진실이 자신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이야기한다. 충격 앞에서 그는 숨지 않고 정면으로 질문을 던졌다. 

“국가권력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

영화 속에서 윤기진이 회상하는 질문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국가권력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는 관객 개개인의 몫이다. 

영화의 역할은 거기까지일 것이다.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관객 개개인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제는 그만큼 무겁다. 

그렇지만 그 무거운 주제를 던져주는 과정, 즉 영화의 호흡은 전혀 무겁지 않다. 주인공들의 진솔한 모습과 이들을 둘러싼 가족과 친지와 동지들의사랑과 우정 때문이다. 

따뜻하게 호흡하는 영화 <불안한 외출>은 공동체 상영을 통해 3천 명이 보았으며 12월 10일 극장 개봉을 하게 된다. 

극장개봉에 필요한 2천만원도 텀블벅을 통해 초과달성하였다. 


2014 부산영화제 이후 영상 보완

<불안한 외출>은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과 함께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불편한 영화였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에는 2014년 12월 익산 신동성당 테러사건 이후 영상을 보완하였다.  

영화는 김철민 감독의 두번째 장편 다큐이다. 

첫번째 장편 다큐는 가수 백자를 주인공으로 한 <걸음의 이유>로서 1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경쟁부문, 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16회 광주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김철민 감독의 다큐멘터리 단편으로는 <잊을 수 없는 원한>(2004), <민족학교에 가다>(2005), <그가 싸우는 이유>(2006), <시대의 증언자 렌즈 촛불을 보다>(20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