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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사회] 이미륵 박사 묘지 영구임대하기까지

 

이미륵 박사 묘지 영구임대하기까지

이미륵 기념사업회, 젊은 세대 참여 많아지길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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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기념사업회가 이미륵 묘지를 그레펠핑시에서 영구임대하기까지의 사연을 보면 이 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주변 독일인과 한국인들이 나름대로 묘지를 찾다가 결성된 이미륵 기념사업회가 일해온 과정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이뤄졌다.

이미륵 기념사업회는 1992년 신윤숙 박사와 뮌헨과 근교도시와 아우구스부르크에 사는 이들이 모여 시작했다. 매년 추모제를 드렸다. 처음에는 일곱 사람 아홉 사람 하더니 나중에는 2030명으로 늘어나며 장소가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기일인 320일엔 바이에른에 눈도 안 녹아 이장을 하면 좋겠다고 해서 의논을 시작했다.

이런 마음이었다. 독일교육에만 맡겨놓으면 아이들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 노심초사하던 부모 마음, 본받을 큰 인물을 가까이서 보여주기 위해 알러하일리겐탁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레필펭 묘지를 오가던 부모마음, 혼자 와서 사시다 혼자 가셨는데 우리라도 제사 모시자 하여 받든 손길, 한국에서 온 정종이나 오징어포 들고 가서 음복하고 인사하던 마음이 모였다.

1995년에 지금 자리로 이장했다. 국내 이미륵기념 사업회의 정규화 교수의 중재로 국내 외교통상부에서 만 불을 지원 받아 비석도 하고 작년에 만료된 묘소 관리비도 지원받았다. 1999년에는 이미륵 박사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묘역 조성 문제를 의논한 결과 전통묘소로 꾸미기로 결정했다. 국내에서 대리석 비석을 맞춰 왔다. 운송비 문제는 당시 한국인으로서 건축할 때 쓰는 거푸집을 만드는 페리 회사에 있던 서항석 부사장의 도움으로 기념사업회가 부담을 지지 않았다.

2009년 봄. 기념사업회 사람들의 마음이 바빴다. 지금의 그레필펭 묘역으로 옮겨오면서 맺은 임대계약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계약을 연장할 것인가, 얼마나 연장할 것인가, 20년 후에 더 이상 연장이 불가능하면 묘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독일에 명예묘지(Ehrengrab)이란 개념이 있긴 하나 이는 외국인 민간단체로서는 해내기 힘든 일. 지금 기념사업회 1세대들이 없을 때 누가 그 묘를 계속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이미륵 기념사업회는 더늦기 전에 이 묘지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그레펠핑 시와 대화했다. 35년의 시한을 뛰어넘는 영구임대 계약을 맺고자 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그레펠핑 시는 독일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제안 앞에서 당황스러워 했지만 25천 유로를 내면 묘지영구임대계약을 맺겠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25천 유로가 필요했다. 재독동포사회의 사정으로는 모으기 힘든 금액이었다. 기념사업회는 기금조성의 가능성을 의논했다.

기념사업회측은 그간 이미륵 기념사업을 통해 쌓은 교분으로 국내 기금을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한국에 간 기념사업회 관계자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종한 감독은 마침 64일부터 강남 CGV 극장에서 “압록강은 흐른다”(텔레비전 3부작의 축약형태)가 상영되는 것을 활용해서 모금운동을 제안하고 언론보도를 조직해 줬다. 많은 시민들이 호응했다. 일흔 되신 할머니 한 분은 기사를 보고 병원에 계시다가 오시기도 했다. 거제도에 있는 회사에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이미륵 박사의 유족대표로서 국내 이미륵 기념사업회 이영래 회장은 모금 운동의 편리를 위해 국내구좌를 사용할 수 있게 배려했다. 일정금액이 모였지만 25천 유로의 3분의 1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그러던 차 이종한 피디를 통해 부산저축상호은행의 김양 부사장이 지원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기금 문제가 해결됐다. 기금 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독일 금융거래 관리법이라든가 국내 외환관리법 등과 관련하여 법적 형식을 채워야 할 일도 있었지만 이 또한 2세 변호사의 참여를 통해 잘 해결됐다.

이미륵 기념사업회의 성공적 영구임대 사건은 재독동포사회에서 이미륵에 대한 관심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동포사회 내에 돌아다니는 이종한 감독의 3부작 드라마는 이미륵의 삶을 한층 더 재조명하게 했다.

현재 기념사업회에는 아헨, 비스바덴, 베를린을 비롯 독일전역에서 이미륵 기념사업회에 참여할 의지를 밝혀오는 소식이 쌓이고 있다. 서로 모르던 사람이 새해 첫날 이미륵 박사의 묘지에서 만나 친분을 쌓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기념사업회측은 앞으로 젊은 세대의 왕성한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 이미륵의 삶에 대해 관심 갖고 연구할 사람들의 참여도 기다리고 있다.

[풍경 2호 16면] 201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