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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저 나무 위에 저 짐을 누가 올렸을까

파리 노숙자들의 삶에 집중한 하차연 (비디오 설치작가)

“아틀리에를 구하기도 어렵다 보니 거리에서 촬영하는 일이 많아지고 거리가 아틀리에처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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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                                                  (c) 하차연 / www.hachayoun.com

옛날 어머니 할머니가 이삿짐 쌀 때 보자기에 두툼한 이불을 꼭꼭 싸던 그때 그 손길을 생각하게 하는 저 짐. 누가 무슨마음으로 저 나무에 올렸을까? 저 짐을 저 나무에 올린 사람들은 낭만과 예술의 도시로 명성을 날리는 메트로폴 파리의 노숙자들이다. 바깥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이불과 옷가지를 꼭꼭 싸서 낮에는 저 나무에 보관했다. 불안한 삶의 근거를 딛고 서서 아침이면 옷가지와 이불을 꼭꼭 싸서 올리며 마음을 다스렸을 손길이 실려 있다. 관광객들은 그냥 지나칠 저 보따리를 설치비디오작가하차연씨는 기록으로 담았다. 제목은 “보관”이라 했다.

하차연씨는 노숙자의 삶을 소재로 사진, 비디오, 설치예술, 퍼포먼스 작업을 5년 가량 지속적으로 했다. 그 중 네 작품,“스위트홈”(2004), “발라드 드 카롤레”(2008), “스위트홈 4”(2009), “바생 데 레꼴레”(2009)는 올해 2월 26일 독일 올덴부르크 방송에서 방영했다. 화제가 되는 비디오작가를 매달 한 명 선정하여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하차연씨가 선정된 것이다. 30분 프로그램 전체를 한 작가에 집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파리에서 활동하는 하차연씨가 이미 독일과 프랑스에서 지닌 위상이 증명된다.

잘 나가는 작가 하차연씨는 왜 하필 노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건 본인의 삶과도 관련 있었다. 노숙자촌철거문제가 사회적 논의대상이 될 정도로 첨예한 관심사가 아니던 시절 파리에서 노숙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2000년대 초다시 돌아온 파리에서 주거문제가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정착”이란 화두에 빠진 때였다. 파리 11구에 살았는데 인근 지하철역에는 유난히도 많은 노숙자들이 있었다. 

2004년,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다는 상상으로 바닥에스티로폴을 깔아 퍼포먼스를 했다. 본인은 아틀리에를 구하기도 어렵다 보니 거리에서 촬영하는 일이 많아지고 거리가 아틀리에처럼 되었다. 연줄도 없고 전시공간도 없다 보니 누리집을 만들어 작품을 걸었다.

거리를 아틀리에로 삼고선 2005년 4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바생 데 레꼴레 주변을 관찰하며 430여 점 사진을 찍었다. 여기 소개한 사진 외에도 노숙자들이 짐을 담아 끌고 다니는 수레, 텐트 치고 사는 모습, 노숙자촌 철거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2008년에 발표한 “발라드 드 카롤라”에서는 정착하지 못하고 발에 차이고 날아 다니는 비닐봉지의 모습을 정착하지 못한 존재의 상징으로 삼았다. 2007/2008년 겨울에는 바생 데 레꼴레 주변에서 멀리 떠나지 못하는 노숙자들과 함께 살다시피하며 사회봉사원처럼 그들이 필요한 부분을 돕고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줬다.

시혜의 시선이 아니라 진심으로 함께하여마음이 통했기에 작업에는 다른 곳에 보도되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다. 이 점이 바로 하차연씨의 강점이자 성공의 비결이됐다. 파리에서 발표한 “야영지의 기록”(2009)이나 “바셍 데 레콜레”(2009)에 담긴 노숙자들의 이야기는 도시미관을 우선하는 논리와 인간의 존엄을 중시하는 시선 사이에서 관객을 고민하게 한다.

아틀리에 없는 작가의 경험, 상징소재가 된 비닐봉지, 외국인, 노숙자, 불법체류자 등을 통해 정착의 문제를 투시하는 하차연씨는 정착하지 못한 존재의 어렵고 힘든 이미지를 전달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고자 한다. 본인이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작업하느니만큼 프랑스의 현실에 관심 갖고 적극 개입하는 삶을 중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대에 집 떠나 프랑스와 파리에서 학업과 작품활동 하다 벌써 쉰 살이 됐다. 그사이 프랑스와 독일에서 여러 가지 진흥기금과 작가상을 받았다. 2008년에는 국내 전시회에 초청받아 KBS 라디오와 인터뷰하고 언론을 통해 해외활동 중진작가로 인정받았고 2009년에는 프랑스 프와티에시에서 작품활동 25주년 기념전을 가졌다. 자신이 다닌 대학과 시립갤러리 루이즈 미셀과 멀티미디어전문기관인 에스파스 멘데즈 프랑스 등이 공동으로 전적 지원을 해준 화려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고향의 봄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설렌다.

[풍경] 2010년 3월호 표지기사 (사진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