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살아움직이는 붓'

'살아움직이는 붓'
9월 17일, 95주년 탄신일

국제윤이상협회 슈파러 사무국장, 바이에른 클래식에 윤이상 음악해설

 

루이제 린저의 표현 '상처입은 용'은 윤이상 선생의 태몽과 박정희 정권에게 어처구니 없이 탄압당한 사건을 결합한 것이다. 윤정모 소설가의 '나비의 꿈'은 서울 구치소에서 자살을 시도한 후 감옥에서 쓴 오페라 작품의 제목이다.


탄압을 겪지 않은 그의 모습을 전제한다면, 어떤 영상이 가능할까? 현무(玄武)라 하자. 강서대묘 사신도에 그려진 상상의 신. 동쪽을 지키는 청룡, 서쪽을 지키는 백호, 남쪽을 지키는 붉은 봉황 주작와 함께 북쪽을 지키는 현무. 상상의 존재 현무는 어우러짐의 대명사이다.

 

신화 현무(玄武)
금기를 깨고

 

2004년 8월 10일 법보 신문 심정섭 기자가 윤이상 선생 미망인 이수자 여사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윤이상 선생은 1963년에 북을 방문했다. 그로부터 30년 지나 1993년 서울에서는 '아! 고구려' 전시가 열렸다. 고구려 흔적이라고는 몇 장 사진으로만 더듬어 본 한국인들의 정서생활 구석구석에 금기의 자물쇠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화들짝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윤이상 선생이 금기를 깨고 고구려 벽화를 보러 간 것은 어떤 용기였을까? 냉전 시대라 하나 당시 동서 베를린이 서로 오가는 터인지라 쉽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전제는 안이한 추정이다. 선생의 전기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때 그의 북한행은 남과 북에 얼음처럼 놓인 분단이 강요한 금기사항에 갇히지 않은 광폭행보이며 이는 일제 시대에 항일운동을 한 경력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선생은 또 실제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곡을 하기도 했다.


서울을 떠나 유럽으로 가기 전에는, 영혼이 지치고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목동의 노래'라는 노래집을 냈고 국내에서 당시 예술가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영예 '서울문화상'(1950)을 받고 파리로 베를린으로 국제무대에 우뚝 서 동서양의 음악을 합일하고 더 나아가 올바른 세상을 갈망하며 스스로를 태운 청년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화염에 싸인 천사'를 쓰기까지 그의 인생의 큰 줄기는 주작의 날갯시위와 현무의 어우러짐의 도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


금기사항에 갇히기에는 너무 큰 그의 상상 세계는 동과 서를 어우르는 것 뿐 아니라 남과 북을 어우르는 과제 앞에 서 있었다. 동과 서를 어우르는 일은 예술에서 구현되었지만 남과 북을 어우르는 일은 그에게 부단한 고통을 지웠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가 깨뜨린 금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상의 유리감옥을 깨뜨리는 용기가 되었다. 집단정신외상으로 얼룩진 상상력을 치유하는 길에서.

 

"과거사 정리 없이 평화도 없다"
나치와 군사정권

국제윤이상협회 슈파러 사무국장에 따르면 80년 민중항쟁 이후 그의 음악은 더우 사회참여성이 짙어졌다.
1981년에는 '광주여 영원히(라틴어: Exemplum in Memoriam Gwangju)를 발표하여 광주 민중의 혼을 위로하였다. 또 과거사 정리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뜻을 견지하여 파시즘 독일이 멸망할 무렵 본회퍼 목사와 함께 살해 당한 알브레히트 하우스호퍼의 소네트에 곡을 붙이고, 나치 시대에 북구로 망명하고 나치 이후에 자신의 동포들의 고난을 호소한 시인 넬리 작스의 시에 곡을 붙이며 나치 독일의 문제와 당시 현안이던 파시즘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을 함께 견지했다. 

 

1994. Engel in Flammen (화염에 싸인 천사)

윤이상 선생은 고국의 민주화에 대해 희망을 걸었으나 1990년 들어 민주화가 시작도 되지 않은 고국현실을 안타까워하였다고 슈파러 국장이 회상했다. 윤이상 선생은 정권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면 분신하는 청년학생들에게서 '화염에 싸인 천사'를 보았다.


1994년에 쓴 마지막 작품 '화염에 싸인 천사'(Engel in Flammen)'는 그 천사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천사들이 사후에 우주에서 듣게 될 소리는 '에필로그'로 첨부했다.


소프라노, 여성합창과 악기 다섯 (혹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이 곡에 대해 정유하는 이렇게 설명한다.
"특정음에 다양한 상징성을 부여하면서 곡을 진행시키고 있으며 이 특정음을 향한 중심음 기법을 사용한다. 하프는 천사를 묘사하는 악기로 사용되며 소프라노 독창은 희생당한 어머니를 상징하고 여성합창단원들은 분신한 젊은이들의 혼을 노래한다." (정유하, 윤이상의 참여음악연구 한글초록, 민주주의와 인권 제11권, www.dbpia.co.kr)

 

'화염에 싸인 천사'는 1995년 5월 9일에 도쿄에서 초연을 했다. 작곡가는 같은 해 11월 3일 그가 진혼해 준 그 천사들의 세계로 갔다. 조국의 분단현실을 몸으로 겪으며 자신의 명성과 안락함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평화를 추구한 그도 천사였다.


살아움직이는 붓길

분단의 비극이라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표현일 것이고, 분단상황으로 인해 부딪친 험산준령은 고통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인생을 두려워하지 않은 자는 자유롭다. 윤이상 선생은 그런 '자유'를 선택했다. 분단시대가 도발한 금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음악이 '살아있는 붓길'이 되는 것은 그의 음악적 능력에 바로 그러한 '자유'가 토대이기 때문에 담보되는 것이라 하겠다. 


 

2012.9.17
윤이상 탄신 95주년 특별방송 (BR)

Walter-Wolfgang Sparrer
Lebendige Pinselstriche
Zum 95. Geburtstag
des Komponisten Isang Yun

Sendereihe Horizonte
Montag, 17.09.2012
22:05 bis 23:00 Uhr

풍경 32호. 2012년 9월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