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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백남상 수상하는 파안, “고국에서 온 큰 칭찬”

파안, “고국에서 온 큰 칭찬”

허난설헌 시를 가사로 한 무반주합창곡, 10월 16일 백남상 수상식 기해 초연

2013.10.8 현재 

 


 

 

 

재독작곡가 파안 박영희 선생이 한양대에서 제정한 백남상 음악부문의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백남상은 한양대 설립자 백남 김연준을 기념하여 제정한 상으로 과학기술, 음악, 인권/사회참여 세 부문이 있으며 각 부문에서 크게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게 되어 있다. 음악부문 상금은 5천만 원에 달한다.

 

"고국에서 온 큰 칭찬"
 
팬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올 것이 온 것 같지만, 수상소식을 들은 파안 본인은 노장답지 않게 겸허하게 "고국에서 온 큰 칭찬"이라며 기뻐했다.
"40년을 유럽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가슴 속에 담아온 고향 안에서 살았는데 40년 후에 한국에서 큰 칭찬을 해 주시니까 아주 기쁩니다. 제 많은 작품들은 우리말 제목의 옷을 사뿐히 입고 세계음악회장에서 노래하고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서, 한국의 영혼을 안아 가꾸고 살았는데 큰 칭찬을 이제 우리말로 듣는다는 것은 기쁜 사건입니다."

이에 덧붙여 파안은 백남 김연준이 한양대 설립자이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청산에 살리라"의 작곡가라는 점을 들어 더욱 뜻깊다고 하며 백남상을 제정한 분들과 심사위원 모두에게 고마우며 백남을 기리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많은 어르신들을 존중하고 잘 모시는 아름다운 풍토가 늘 가꾸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파안은 35세 나이에 도나우에싱엔 음악축전에서 위촉작품을 쓰게 되었다. 도나우에슁엔 음악축전이라면 1966년 윤이상 선생이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위촉작곡가로 <예악>(Reak fuer großes Orchester)을 초연하여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바로 그 축전이다. 도나우에싱엔 음악축전사상 파안이 여성으로서 첫 위촉작곡가가 된 것은 당시 그에게 쏟아진 독일음악계의 찬사가 어느 수준이었는가를 이미 말해 준다. 당시 그는 이미 1978년 스위스 보스빌 제 5회 작곡가세미나 (Komponistenseminar in Boswil/Schweiz)에서 1등상 수상, 1979년 파리 유네스코 주최(Rostrum of Composers, Unesco, Paris) 작곡콩쿨에서 1등상을 수상한 찬란한 경력이었다. 1980년 위촉작품인 오케스트라 작품 ‘소리’가 도나우에싱엔에서 초연되었을 때 그는 이미 국제적 명성의 길에 들어섰다.

독일에서 작곡과 전공, 고전음악이론 전공으로 2개 디플롬을 획득하여 공부도 마치고 게다가 국제음악제 1등상도 여럿 받아 어머님이 기다리시는 고국에 돌아갈 계획을 세웠으나 그것은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독일에 남게 되었으나 열정적인 작곡 생활은 그를 오늘날 독일에서 살고 있는 현대작곡가 중 명실공히 명성을 누리며 실제로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로 만들었다.

40년을 독일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따뜻한 오래된 한국의 어머니 같은 파안 은 그를 사사한 제자들에게는 섬세하고 자상한 스승으로 기억된다.

독일에서 누리는 명성에 비하자면 한국에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지만 근년 활동으로는 한국에서 2012년 여름 대관령 축제에서 위촉작품 <초희와 상상의 춤>을 발표한 것을 들 수 있다. 박영희 특집을 위한 국내 방송팀들의 독일 취재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초희와 상상의 꿈>은 2012년에 잘츠부르크에서 오스트리아 한국 외교관계 120주년, 대사급 수교 50주년 기념을 기해 열린 연주회에서 공연되었다. 11월에는 브레멘에서 창단한 '앙상블 뉴 바빌론'이 독일 초연을 하였다. 올해 초 독일문화방송(Deutschlandradio Kultur)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라디오 문화방송 (Kulturradio von rbb)이 주최한 울트라샬 음악축전에서는 <초희와 상상의 꿈>을 개작하여 <어느 시인의 상상의 꿈>으로 발표하였다.

칠순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파안은 올해 전반기에는 키에르케고르 탄생 2백 주년을 맞아 위촉작품을 써서 발표했다. 여름 휴가를 보낸 후에는 백남음악상 수여식을 기해 서울에서 초연할 무반주 합창곡(A-cappella-Chor) “연꽃–허초희에 대한 기억” (Lotosblumen - in memoriam Heo Chohui“)을 작곡하는 중이다.

백남상 시상식과 함께 울려퍼질 허난설헌의 노래 셋은 <연밥을 따는 노래>, <서릉의 노래 2>, <꿈에 광상산에 노닐며> 세 편에서 각각 4행씩 가져온 구절이이다. 파안은 여기에 무반주 합창곡으로 곡을 붙이는 중이다. 박치용 지휘자가 지휘하는 서울 모테트 합창단이 초연을 맡기로 했다.

작업에 사용하는 텍스트는 오해인 역주 난설헌 시집 (1980, 서울출판, 해인문화사)에서 가져왔다. 세 노래 모두 “연꽃”이란 암호로 담고 있으며 이 암호를 중심으로 난설헌의 인생 전체를 압축한 듯 세 가지 시간대를 보여 준다.

첫 노래 <연밥을 따는 노래>는 아직 가슴 설레이는 푸른 시절을 담고 있고 두번째 노래 <서릉의 노래>는 “내 집”, “오월이면 연꽃이 피기 시작”하는 고향에 대한 회상이 담겨 있고 세번째 노래는 난설헌 허초희의 스물 일곱 해 인생에 대한 예언처럼 생각되기도 하는 “아리따운 연꽃 스물 일곱 송이”와 “서리달”을 통해 생이 완성되는 순간의 적막을 이야기한다. 다음은 파안이 작곡 중인 것으로 공개한 난설헌 시귀 셋

 <연밥을 따는 노래> (286쪽)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물 건너 임을 만나 연밥 따서 주곤
혹시나 남 봤을까 한나절이 스스러웠소

<서릉의 노래 2> (156쪽)

전당 강가가 바로 내 집인데
오월이면 연꽃이 피기 시작하지요
검은 머리 반쯤 드리우고 졸다가 깨어
난간에 기대서 열없이 뱃노래 부르네

<꿈에 광상산에 노닐며> (284쪽)

푸른 바다는 요지에 번지어 가고
푸른 난새는 오색 난새에 의지해 있네
아리따운 연꽃 스물 일곱 송이
분홍꽃 떨어지고 서리달은 싸늘하네

 

10월 파안 음악이 있는 곳

백남상 시상식을 기해 허난설헌의 시에 곡을 붙인 무반주합창곡이 초연되는 10월 16일 같은 날, 쾰른 콜룸바 쿤스트무제움(Kolumba Kunstmuseum)에서는 파안의 "상흔을 꿈에 보듯이"(Wundgetraeumt)가 연주된다.

"상흔을 꿈에 보듯이"는 플륫, 오보에, 클라리넷,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한 곡으로 2004년/2005년 작품으로 삶과 죽음과 꿈이 하나라는 동양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병철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18일에는 추리히 발헤투름(Walche-turm)에서, 20일에는 바젤 가르뒤노르(Gare du Nord)에서 <항상 5번>(HANG-SANG V)이 연주된다. 앙상블 코리언 뮤직 프로젝트(Ensembles Korean Music Project)와 앙상블 푀닉스(Ensemble Phoenix)가 연주한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백병동과 클라우스 후버 작품도 들어 있다. 이정해
(Junghae Lee)와 데니스 슐러(Denis Schuler)의 작품이 초연된다.

21일에 하노버에서 <Musik 21 im NDR>의 일환으로 연주되는 <은빛 현들> (Silbersaiten II)은 2004년에 작곡한 피아노 삼중주 곡으로 고트프리드 켈러의 시 <젊은 시절의 회고>(Jugendgedanken)에서 시인이 은빛 현들이 퉁기고 스친 만남의 순간이 가슴에 울린 것을 표현한 데서 착상하였다 한다.

파안은 독일에 살지만 두고온 고향 한국의 정서를 늘 품고 살며 음악 속에서 구현해 오고 음악이란 매체를 숙명처럼 안고 살면서 끊임없이 시를 통해 영상을 가꾸며 지나간 현인과의 내적인 대화 속에 살고 있다.  


글: 이은희
풍경 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