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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나의 1960년대

1960년대에 시골에 산 적이 있다. 박정희가 들어서서 무슨 의사 TO제란 것이 생겨 대구에서 개업을 할 수 없게 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4남1녀를 데리고 인근 면 소재지로 이사하셨다. 그 곳에 6년 가량 산 기억은 도시의 삶과 다른 체험을 마음 깊이 남겼다. 

 

우리가 살던 집은 우체국 앞이었는데 큰 길을 건너 오른쪽 목수집 모퉁이에 있는 비탈길을 올라가면 교회 조금 못 가서 담장이 없는 집 안으로 종종 눈이 갔다. 거기에는 나보다 더 어린 아이들 둘이 땅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 아이들이 입고 있던 가난은 내가 독일 와서 "전세계를 위한 빵"이란 프로젝트 안내장에 나와 있는 다른 나라 아이들의 남루함을 볼 때마다 떠올랐다. 그것이 나의 고국이고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도시스러운 옷을 입고 성적이 늘 앞자리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내 선택이 아니라 그런 부모님을 만났을 뿐이었고 나의 부모님 또한 그런 부모님을 만난 우연이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시골 생활에서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밤중이라도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왕진을 와 달라 하거나 전화를 받고 나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절대 의사는 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어머니는 촘촘히 외상 장부를 적어 두었지만, 그것을 들고 움직이려고 하면 아버지는 싫어하셨다. 그런 장면 속에서 어머니는 투덜거리기도 하셨지만, 아버지를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결코 의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의사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약장에서 비치는 약종이를 꺼내서 그림책 글자 위에 얹고 글자를 베껴 쓰면서 독학하면서 그 공간에 있던 아버지의 유리장 속에 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늘 보고 지나다녔다.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때 아버지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따라 사는 분이었고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헌신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나는 그래도 도덕의 요구에 따라 살지 않고 자유를 즐기며 어항에 금붕어를 키우며 살고 싶었다. 

 

지난 해에는 한국에 다니러 가서 부모님의 진실을 또 한 가지 알게 되었다. 세째 오빠는 밤에 잠결에 들은 두 분의 대화 내용이다. 아버지가 산 넘어 동네에 가서 아이를 받아 주고 오셨다. 한밤중에 50cc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오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왕진비에 대해 물어 보셨고 아버지는 둘로 보니까 차마 돈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그냥 오셨다 한다.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오빠가 들었다. "그럼 우리 애들은 뭘 먹이나요?" 그렇게 말한 어머니는 산 넘어 그 집에 가서 고추 몇 개를 얻어 오셨다 한다. 오빠는 아버지가 너무 멋져 보여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따라 의사가 되겠다는 소망을 더욱더 불태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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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960년대를 생각하는 것을 그때 우리 사회가 처했던 남루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선 가능성이 있는 대선 후보 둘이 있다. 윤석열와 이재명. 하나는 나와 동갑인 1960년생이고 다른 하나는 1964년생이다. 하나는 베레모를 쓰고 유치원 다닌 사진이 있고 부모님이 교수였다 하니 당시 한국사회의 승자 클래스다. 다른 하나는 어쩌면 내가 수도 없이 보았을 그 농촌의 남루한 나보다 조금 어린 아이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 둘이 걸어온 길도 서로 다르고 현재 표방하는 정책을 비교할 수 없고 (하나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투도 다르다. 그런데 나는 두렵다. 그 베레모를 쓰고 유치원을 다닌 아이가 대통령이 될까 봐. 그 아이는 국민을 상대로 취조실에서 범죄혐의자 다루듯이 한다. 뿐만 아니라 죄없는 사람에게 자기 죄를 덮어씌우는 무시무시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런데 그때 그 1960년대의 남루함을 등에 지고 다가오는 한 아이가 있다. 사실 그 1960년대에서 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민중을 '개돼지'라고 했던 나모씨 경우도 아버지가 시골의 법무사였고 그 외 번들거리는 승용차를 타고 오가는 기업 임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남루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1960년대는 그랬다. 없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았다. 단지 화려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그 기억을 지우고 살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이재명이 고맙다. 잊거나 억누를 시간을 다시 되살리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달려온 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모략을 당하고 누명을 쓰고 명예훼손을 수없이 당해도 꿋꿋이 달려와서 살아서 서 있는 자에게 천운 있으라!

 

천운은 민심에서 나오고 민심은 밝은 기운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민심이 올바른 판단을 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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