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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생각의 흔적, 상상의 힘 / 독일 최초 라파엘 스케치 50여 점 전시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올해 5백 주년을 자랑하여 드레스덴에 이목을 모으게 한 ‘시스틴의 마돈나’를 그린 라파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전성기 3대 화가에 들지만 많은 작품이 교황의 사저라든가 대중에게 공개되는 곳에 있지 않아 대중들이 접하기 힘든 작품이 많다.

 

라파엘의 역사화는 바티칸의 큰 궁정교회 (그로세 팔라스트카펠)에 걸려 있어 특별한 행사날에나 볼 수 있고 교황의 사저에 벽화나 천정화로 자리한 작품은 일반인들은 아예 볼 기회가 없는 작품들이다. 이번에 슈테델이 갖는 라파엘  특별전 또한 특별한 사연들이 있다.

 

밑그림

 

이번에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에서 열리는 라파엘 특별전은 완성된 작품이라 할 드로잉 작품이 아니라 밑그림으로 만든 스케치 작품 50여 점이다. 이 중 11점은 슈테델이 소장한 것이며 이와 관련하여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대여해 와 모두 50여 점을 전시한다.


소규모 전시이지만 라파엘 작품전이 방문객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몇 줄 선으로 강조된 그림의 흐름이다. 완성된 작품에서는 얼핏 보아 마냥 조화로운 전체의 일부분으로 보이지만 밑그림에서 화가가 강조한 곡선과 흐름의 방향을 보면서 함께 전시된 완성품 사진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은 비록 지루한 세계이나마 생동감 있게 재창조하는 화가의 손길이 전달하는 힘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라파엘이 몇 번이고 선을 굵게 칠하면서 잡은 흐름은 완성된 채색화에서는 일차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고 보면 바로 그것이 최종 그림이 지니고 있는 신비로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큐레이터 요아힘 야코비 박사와 마틴 존아벤트 박사에 따르면 라파엘 스케치 특별전은 네 가지 관점에서 구성되었으며 전시도 순서대로 4부로 나뉘어 있다.


시스틴의 마돈나가 나오기까지

 

첫째는 아이를 안은 마돈나 그림의 일련의 스케치를 각 완성작의 축소본과 비교전시하며 라파엘의 마돈다 회화 발전과정을 보는 것이다.


우선 전시장을 들어서서 바로 왼쪽으로 돌기 시작할 때 바로 접하게 되는 작품 둘은 슈테델 미술관 소장품으로 '아이를 안은 마돈나' 초기 버전 하나, 어두운 바탕에 아이를 안고 서 있는 마돈나 '마돈나 델 그란두카 (Madonna del Granduca)'를 준비하며 구상해 본 어린아이의 머리 스케치이다. 여기에 Duke of Devonshire (Chatsworth)의 소장품에서 대여한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였다. 초기에는 상당한 단순한 구도의 마돈나를 그린 라파엘이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당대 다른 화가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구도를 발전시켜 나가선 명작 중 명작으로 남은 '시스틴의 마돈아'(드레스덴)의 복합적이고 생동하는 시선의 집합으로 진화하는 것을 단계별로 관찰할 수 있다.

 

개별형상들이 서로 흘러들어 이루는 전체

 

두번째 전시군은 라파엘의 회화 속에서 여러 주인공들의 선이 서로 이어지며 전체가 조화로운 하나를 이루는 현상에 대한 연구이다. 대영박물관 소장 '기사의 꿈 (Traum des Leiter)' 이라는 라파엘 청년기 걸작의 스케치로 시작하여 Ashmolean Museum of Art and Archeology (Oxford)와 윈저 궁 영국 여왕의 소장품들이 전시된다.


중심 소재는 교황의 거처에 있는 스탄차 델라 세그나투라에 있는 대형 벽그림 모사와 그림 일부분의 세부 습작과 굵직한 흐름을 보여 주는 선들이다. 작품이 생동감과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화가가 어떤 전술을 사용하였는지를 느껴볼 수 있다.

 

역동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림

 

세번째 전시군은 서구 역사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라파엘의 역할에 관해 새로운 시선을 획득할 수 있는 전시그룹이다.

1510년작 동판화 '베들레헴의 영아살해'를 제작하면서 준비한 스케치에는 칼을 내리치는 사람, 칼을 들어올리는 사람, 땅에 넘어지는 사람 다양한 방향의 선을 구사할 뿐 아니라 완성된 그림에서 강하게 부각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따로 있어 전체 그림 구도에 대해 화가가 준비하는 역동성의 전술을 짐작할 수 있다. 그외 '페루기아의 점령'이라든가 '레오 1세와 훈족 아틸라 왕의 만남'을 소재로 그림를 구상하면서 스케치한 것를 살펴볼 수 있다.

미완의 기획 치기의 카펠레 (Chigi-Kapelle)
1510/1514

 

네번째 전시군은 미완의 기획 치기의 카펠레이다.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라 파체(Santa Maria della Pace) 교회에 있는 치기의 카펠레를 장식하는 일은 라파엘에게 교황만큼이나 일거리를 많이 주었다는 당

대의 대부호 아우구스토 치기(1466-1520)가 위촉한 일이었다. 가족묘로 염두에 두고 라파엘에게 맡긴 일이었으나 기획은 중단되 버리고 라파엘의 스케치는 일부만 실현되었다. 전시회에서는 라파엘의 스케치 뿐 아니라 치기의 카펠레 내부 사진으로 벽을 장식하여 현지 공간을 상상하기 좋게 하였다.

이 일이 중단된 것은 치기가 사실상 좀더 큰 다른 카펠레에 묻힌 것으로 보아 라파엘에게 맡긴 일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는 해석이 있다. (치기와 라파엘은 1520년 같은 해에 사망했는데 치기는 카펠레에 묻히고 라파엘은 로마의 큰별들이 묻히는 판테온으로 갔다.)

라파엘이 완성한 부분은 중앙제단 뒷면으로 난 벽화 ‘둘’이다. 윗부분 벽화는  호세아, 요나, 다윗, 다니엘 네 선지자가 예수의 부활을 시사하는 문구를 들고 있으며 그 아래에 자리잡은 벽화에는 고대 그리스의 무녀 시빌레가 천사를 통해서나 직접 읽는 장면을 통해서나 예수 부활에 관한 글귀를 보는 장면이 담겨 있다. 시빌레 스케치는 라파엘이 도달한 역사화의 역동성의 차원을 넘어 의상을 부드럽게 널어뜨린 선에 우아함의  넘어 의상을 부드럽게 늘어뜨린 것이 인간의 선을 재현한 르네상스 기획이 이룬 경지를 보여준다.


이 전시군에서는 라파엘이 사망한 해 1519/20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하나 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의 생애와 교황들의 권력을 합리화하는 정서를 유도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형상이었다. 해당 벽장식에서는 레오 10세 교황이 앉아 있고 그 주변을 알레고리와 카리알리데들이 둘러싸고 있다. 슈테델 소장 스케치는 천정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카리알리데를 습작한 것으로 여기서는 대들보가 생략되어 있다.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시선의 소용돌이를 담고 있는 역사화에 비해 정적인 구도이기는 서 있으나 그냥 기둥에 가까운 차림이 아니라 인체는 살아 숨쉬고 의상 주름은 흩날리는 듯한 느낌이 살아 나는 이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레오 10세 벽장식 완성품 또한 지난 세대의 종교화나 신전 건축물과 확연히 다른 사람의 인체를 보여 주고 있다.


라파엘은 1520년 4월에 세상을 떠나고 예의 콘스탄틴 홀 장식을 그 후에 완성되었지만 콘스탄틴 홀의 벽장식은 라파엘이 이제 사람 중심의 시선으로 열리는 새로운 시대의 중요한 주자였다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

 

슈테델 미술관 파사봉 소장실장

 

종교화 속의 인물에서 사람의 모습을 살려내고 고대신전의 형상을 생기를 불어넣은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이 그 후 수백년 사람중심으로 발전해 간 문예미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라파엘의 진가를 알고 소중하게 챙긴 후세인이 바로 화가의 예술을 영원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슈테델 특별전 큐레이터들이 특별히 감사하는 미술관 선배는 파사봉이다. 파사봉은 1840년 53세 나이로 슈테델 미술관  소장실장으로 임명되어 슈테델 미술관을 국제적 위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림을 사고 파는 데 있어서 행정부에서 비싼 것을 사들이는 것을 경계하고 기존의 것 중 내놓을 것은 경매를 붙여 팔고 미술품을 보는 뛰어난 안목으로 훗날 크게 평가받은 작품들을 구입했다. 그 중에는 오로지 파사봉의 감각으로 구입한 작품이 구입 당시는 작가 미상이었으나 19세기 들어 라파엘의 그림으로 판정된 것이 있다.

파사봉은 그의 색다른 소장품 관리정책으로 지역사회 언론의 논쟁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오늘 슈테델 미술관에서는 그를 고맙게 생각한다. 막스 홀라인 슈테델 미술관장에  따르면 파사봉이 쓴 라파엘 전기는 오늘날도 그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할 정도이니 한 파사봉이 프랑크푸르트 시민사회의 자부심이 슈테델 미술관에 끼친 영향을 넉넉히 알만 하다.


2012년 11월 7일부터 2013년 2월 3일까지
RAFFAEL
ZEICHNUNGEN
Staedel Museum
Schaumainkai 63 · 60596 Frankfurt am Main

Katalog / Catalogue
Hirmer Verlag, Dt. 34,00 Euro
/ Engl. approx. 45 Euro

 

2013년 1월 18일부터 20일
라파엘에 관한 학술 콜로퀴움 (영어)

 

참조자료: 카리알리데(Karyalide / caryatid)는 그리스 신전에서 기둥으로 서 있는 여인상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고대의 건축요소는 1450년 베니스의 도겐팔라스트에 건축요소로 등장하여 16세기에는 실내 건축과 건축 외양 장식에 쓰이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길어온 그리스 문화의 흔적 중 하나인 이 카리알리데는 20세기에도 건축물을 장식하는 요소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