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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무 위에 저 짐을 누가 올렸을까 파리 노숙자들의 삶에 집중한 하차연 (비디오 설치작가) “아틀리에를 구하기도 어렵다 보니 거리에서 촬영하는 일이 많아지고 거리가 아틀리에처럼 되었다” [보관] (c) 하차연 / www.hachayoun.com 옛날 어머니 할머니가 이삿짐 쌀 때 보자기에 두툼한 이불을 꼭꼭 싸던 그때 그 손길을 생각하게 하는 저 짐. 누가 무슨마음으로 저 나무에 올렸을까? 저 짐을 저 나무에 올린 사람들은 낭만과 예술의 도시로 명성을 날리는 메트로폴 파리의 노숙자들이다. 바깥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이불과 옷가지를 꼭꼭 싸서 낮에는 저 나무에 보관했다. 불안한 삶의 근거를 딛고 서서 아침이면 옷가지와 이불을 꼭꼭 싸서 올리며 마음을 다스렸을 손길이 실려 있다. 관광객들은 그냥 지나칠 저 보따리를 설치비디오작가하차연씨는 기록.. 더보기
유럽 백자 탄생 3백년 (c) meissen.com 유럽 백자 탄생 3백년 동쪽나라 아시아에서 온 하얀 도자기에 감탄하며 비법을 캐내려던 이들이 있었다. 작센 선제후요 폴란드왕이던 아우구스트에게서 위탁받은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게와 에렌프리드 발터 폰 취른하우스 같은 학자들이었다. 여러번 체계적으로 실험과 기록을 반복하며 하얀 도자기 만들 꿈에 부풀었다. 1708년 1월 15일 실험기록은 최초로 서양의 백자가 태어난 시간. 연금술사 뵈트게는 훗날 아우구스트 선제후 회상록에서 '유난히 곱게 광택나는 하얀 금'이 발명됐다고 표현했다. 유럽에 최초의 "견고한 도자기"가 탄생했다. 2년 후, 1710년 1월 23일엔 마이슨 매뉴팩처가 탄생했다. 어렵게 태어난 유럽도자기는 3백년 세월 지나 유럽의 자존심이 되었다. 그때는 희귀해.. 더보기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고 싶었던 사진사 "유르겐 힌츠페터"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고 싶었던 사진사 “푸른눈의 목격자” 유르겐 힌츠페터 “그때 내게 중요했던 것은 상황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었다” 유르겐 힌츠페터. 1937년생. 라체부르크 시골의사 부부의 아들. 학교 다닐 때는 청년기민당 활동을 잠시 했다. 대학에서는 유르겐은 방송국 사진기자 일을 하며 생활비를 보충했다. 기자로 파견될 일이 있으면서 의학공부를 그만두었다. 병역거부자였던 힌츠페터는 베트남을 비롯 전쟁지역을 다녔다. 1973년부터 1989년까지 ARD/NDR 아시아 담당 영상저널리스트로 토쿄에 있던 힌츠페터 기자가 당시 '광주 학살'과 '광주 항쟁'을 담은 영상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국내신문은 광주를 두고 “북괴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반란”이라든가 "군대가 잘 대처하여 최소한의 희생"(조선일보)”을.. 더보기
춤추는 여왕의 화려한 성공과 우울한 기억 춤추는 여왕의 화려한 성공과 우울한 기억 음악 듣는 기계도 집집마다 없던 시절 우울하게 배회하던 다방과 음악감상실의 노래가 다시 한번 화려하게 달려온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어깨선을 노출한 여자가 활짝 웃고 있다. 뮤지컬 “맘마 미아” 포스터. 흰색과 푸른 색을 써서 청초한 이미지. 친근하다. 세기의 전설적인 힛트 이미지 둘이 고개를 빼곡 내밀어 여기 겹쳐온다. 하나는 마릴린 먼로. 길 환기통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풍선처럼 일어나는 원피스 자락을 붙잡으면서도 사진 찍기 위해 앞으로 뻗치는 몸짓. 다른 하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여선생이 오스트리아의 시원한 풍경을 뒤로 하고 달리는 모습. 전설 속의 힛트 이미지가 쉽사리 오버랩되면서 벌써 힛트 이미지가 된 이 포스터 이미지가 선전하는 뮤지컬 “맘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