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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나의 1960년대 1960년대에 시골에 산 적이 있다. 박정희가 들어서서 무슨 의사 TO제란 것이 생겨 대구에서 개업을 할 수 없게 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4남1녀를 데리고 인근 면 소재지로 이사하셨다. 그 곳에 6년 가량 산 기억은 도시의 삶과 다른 체험을 마음 깊이 남겼다. 우리가 살던 집은 우체국 앞이었는데 큰 길을 건너 오른쪽 목수집 모퉁이에 있는 비탈길을 올라가면 교회 조금 못 가서 담장이 없는 집 안으로 종종 눈이 갔다. 거기에는 나보다 더 어린 아이들 둘이 땅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 아이들이 입고 있던 가난은 내가 독일 와서 "전세계를 위한 빵"이란 프로젝트 안내장에 나와 있는 다른 나라 아이들의 남루함을 볼 때마다 떠올랐다. 그것이 나의 고국이고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도시스러운 .. 더보기
한국 대선과 그뤼네부르크 공원의 기억 나무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다. 코로나를 핑게로 집콕을 하니 몇 일 동안 바깥바람이라곤 창문만 잠시 열어서 쐴 뿐이다. 이제는 바람도 좀 쐬고 싶었다. 조금 여유를 부리며 나가면 발길가는 곳이 바로 그뤼네부르크 공원이다. 그뤼네부르크 공원은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즐길 수 있는 녹지이다. 이렇게 큰 시립공원이 시내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축복이며 또 이 부근에 사는 내게도 축복이다. 그러나 이 공원이 원래 로스차일드 가의 성이 있던 곳인데 유태인들에 대한 혐오를 이용하여 정치권력을 휘두른 나치 히틀러 일당이 헐값에 강제매입한 땅이라 생각하면 이 공원에 눈부신 봄빛이 마냥 다사롭지만은 않다. 하기야 우리가 누리는 것 중 어느 한 톨 모래알이 본시 우리 것이던 적이 있었을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