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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선거. 언젠가는 한번 무효해야 발전 있다


http://www.amn.kr/sub_read.html?uid=7741&section=sc4&section2=


선거 이전에도 불법선거운동 소식이 줄줄이 일어났지만, 한밤중에 경찰이 적당히 둘러댄 사정 앞에서 맥빠지던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그 모든 것을 심판하겠다고 야무진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멘붕을 이야기하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상하다 이상하다 중얼거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선거의 공정관리 의혹을 곳곳에서 제기했다. 


4.11 총선 때 강남을 개표소 사건과 그 외 부실 종이투표함 등 여러 가지 의혹들이 슬그머니 넘어가듯이 이번도 그냥 넘어갈 기세다. 떼쓰는 아이 시간 지나면 잠 든다는 식의 시선 또한 없지 않다. 선거 한 달 여 다 되어 가는 시점에 선거 결과를 붙들고 떼쓰는 못난 사람들로 보일 수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렇게 넘어가면 또 하나의 벽이 쑥쑥 자라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 벽은 중립이라든가 젠틀함의 벽이다. 메끄럽게 쑥쑥 올라가는 유리벽 같은 이 장벽은 갈수록 넘기 어려워질 것이다. 


소리치는 사람은 있으나 정작 들어야 할 사람들이 듣지 않고 있는 이 현실이 불안하다.

나라면 이 외침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너무 많은 여러 가지 분야에 걸쳐 있기에 한 장에 꼭 집어 말할 수 없으나 우선 가장 문제가 되는 전자개표기 혹은 투표 분류기와 수개표에 관해서 정리해 보아야겠다.


관찰의 기준은 선관위 자료로 하자. 선관위 자료가 다 맞다 아니다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선관위가 스스로 규정하고 공지하고 실행한 일을 얼마나 믿음직하게 하였느냐 보자는 것이다. 


선관위의 공지는 우선 깔끔하다.  링크 

 

http://www.nec.go.kr/nec_new2009/BoardCotBySeq.do?flag=&cmSeq=&bmSeq=14&subNum=3&pageNum1=2&pageNum2=1&bcSeq=999&getYn=Y


를 보면 "투표지 분류기의 기능과 특징, 주요 의혹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알림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막고 개표과정에 대한 신뢰를 높여 밝고 깨끗한 선거가 되는 데 기여하기 위하여" 11쪽 짜리 hwp 문서 "투표지 분류기에 관하여"를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도록 누리집에 비치했다. 이 자료를 기준으로 지난 대선을 돌아보자.


1) 유효표와 미분류표 분류 오류


선관위 자료 "투표지 분류기에 관하여" 7쪽에서는 "현재 개표에 사용하고 있는 투표지 분류기는 유권자들이 기표한 종이 투표지를 후보자별 유효표와 미분류표로 분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기능은 시원찮은 것으로 결국 알려졌다. 2번 후보의 표가 대량 1번 후보의 표에 섞여 있는 사진이 여럿 올랐는데, 서초구 경우는 심사 집계부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 서울의 소리에 알려졌다. http://www.amn.kr/sub_read.html?uid=7741&section=sc4&section2=

그 후 이 일을 무마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다시 현장에서 찍은 동영상이 알려져 일차 개표기/분류기의 오류는 확연해졌다. 


2) 참관인도 모르는 심사 집계부 절차


또 같은 자료 7쪽에 따르면 "분류된 투표지는 이후 여러 단계의 수작업 개표과정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고 했다. 이 부분이 제대로 된 것인지 의혹을 받고 있다. 유권자들은 안 한 곳이 있다고 하지만, 선관위는 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을 위해서는 선관위가 같은 자료 5쪽에서 표시하듯 "개표결과는 투표지 분류기에 의하여 후보자 (정당) 별로 분류된 투표지를 여러 단계의 육안 심사, 확인 (심사․집계부의 확인ㆍ심사 → 위원검열 → 위원장 최종확인)을 거쳐 확정되며, 확정된 개표결과는 위원장이 이를 공표한 후 투표지 분류기나 제어용컴퓨터와 연결되지 않은 별도의 선거관리시스템에 입력하여 선관위 전용망을 통하여 중앙선관위로 보고"된다고 했다.

그러니 당연히 심사, 집계부의 확인, 심사, 위원검열, 위원장 최종확인을 거친 자료가 있을 것이고 이 자료는 중앙선관위에 보고된 숫자와 똑같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심사, 집계부의 확인, 심사를 거치는 부분에는 참관인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같은 문서 7쪽에는 "개표사무는 선관위 전임직원외에도 공무원, 교사와 일반국민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관리하고, 정당․후보자가 선정한 개표참관인이 개표 전과정을 감시하며 촬영"까지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개표참관인이 이 개표의 전과정을 몰랐다면 어떤 경우인가? 사실 대선 끝나고 나서야 심사 집계 절차가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 참관인이 속출했다. 이 사실을 두고 참관인 교육을 선관위에서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 당에서 시켜야 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렇지만, 누가 준비를 했건 안 했건, 심사 집계 절차에 대해 몰랐다는 참관인이 있다면, 결국에는 선관위가 한치의 의혹이 없도록 참관인을 개표의 전과정으로 안내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게 된다.  


어쩌면 이 문제는 조작이라든가 의도적인 부정이라기보다는 체계 자체의 부실함을 뜻하게 된다. 동시에 공정관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선관위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기도 하다.


3) 투표분류기 봉인해제할 때 설명해 주지 않았나?


같은 자료 6쪽에는 투표분류기는 "최종점검 후 선거일 개표참관인 확인 전까지 작동금지"하고 "선거일 전일 정당, 후보자측과 개표참관인 등 참여하에 '최종 통합모의시험을 하고 시험운영 DB를 삭제' 한 후, 선거일 개표에 사용하기 전까지 작동할 수 없도록 제어용컴퓨터를 봉인"한다고 되어 있다. "데스크탑 컴퓨터는 전원연결부를, 노트북 컴퓨터는 폴더를 닫고 노트북 전체를 봉인"하고 "선거일 개표소에서는 개표참관인 (전일 봉인에 참여한 개표참관인 포함) 입회하에 전일 봉인했던 상태가 이상없음을 확인한 후 봉인해제를 하여 사용"한다고 했다. 


이 통합모의시험과 봉인해제 과정이 모두 참관인 참관 아래 진행되었을 것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그렇지만 이 과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심사, 집계 과정과 최종 숫자가 나오기까지 과정 정도는 선관위에서 안내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싶다. 


4) 전자개표기인가 투표지분류기인가?


궁극적으로는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컴퓨터를 연결했기 때문에 전자개표기라면 전자개표기인 것이고 선관위가 말하듯이 "공직선거법 제27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산조직에 의한 투표․개표는 투․개표의 수단, 방법, 집계 등이 전자적으로 처리되었다면" 역시 전자개표기다. 하지만 선관위는 이 기계가 "투표지 분류기"라고 하며 이것이 오로지 보조수단이었다고 한다면 참관인들을 이 개표의 보조수단 앞에서만 기웃거리게 한 경우가 252개 개표소 중 하나라도 있었다면 좀 불편하더라도 공정선거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모두 부실한 것이라면,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관이 책임져야 한다


분류기의 정확성, 여러번 수개표 실행, 참관인의 전과정 참여가 선관위의 좋은 의도였으나 유권자들이 직접 겪은 바는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지금의 문제다



투표지분류기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조직의 악의에 의한 것이라 할 만한 증거는 없으나 결과적으로 부실한 선거관리였다는 것은 일차 선관위에서 인정하였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마음이다. 물론, 이처럼 부실한 선거관리에는 유권자와 참관인도 책임이 벗지 않다. 미리 하나하나 챙겨 보지 못한 점이 있다. 

이번 공정선거 논란이 우리 사회 공동체의 좋은 집단경험이 되면 한다. 유권자가 된다는 것 참관인이 된다는 것 모두 많은 책임과 공부가 따르지만, 가장 좋은 것은 선거의 경우는 선관위가 물샐틈 없이 완벽한 공정관리를 해 줄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었다.


선관위는 또 예의 문서에 '모든 투표지를 보관하여 재검을 할 수 있다'고도 규정하고 있으나, 선거 후에 유출된 투표함에 유효표도 섞여 있었다는 것이 알려진 이상, 모든 투표지를 보관한다는 주장 또한 그냥 믿음 여부의 문제가 된 것이지 체제상의 보장은 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부실하였고 오로지 관리자의 성실함과 책임성만으로 버텨낼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분류기의 정확성, 여러번 수개표 실행, 참관인의 전과정 참여가 선관위의 좋은 의도였으나 유권자들이 직접 겪은 바는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지금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선거, 언젠가는 한번은 무효를 해야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