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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프랑크푸르트 시국집회 후기] 사람이 빛이다




프랑크푸르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말 중에 괴테의 마지막 발언이 들어 있다. 프랑크푸르트 한인들 박근혜 퇴진요청 3차 집회가 괴테광장에서 열린 김에 잠시 그 생각을 해 본다.  


"좀더 빛을!"(Mehr Licht!) 란 말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중심에서 태어나고 세례를 받은 괴테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구분이 없이 다양한 학문 분야를 섭렵하고 당대의 성공과 명예를 누렸으나 세상을 떠날 때 뭔가 아쉬웠던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죽을 때 한 말 "좀더 빛을!"(Mehr Licht!)이란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란 오스트리아 작가는 괴테가 한 말이 "좀더 빛을!"이란 뜻이 아니라 "불편해"(Mir liegt´s schlecht.)란 말이었는데 잘못 회자되었다는 아이디어를 내었다. (프랑크푸르트 사투리는 이 경우 g를 제대로 발음하지 않고 ch 발음을 한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다) 그러나 오늘날 괴테 동상 앞에서 이 해석의 자유를 생각하자면 좀더 빛이 필요하다는 것과 불편하다는 것은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로 통한다. 불편하지 않으면 왜 더 나은 것을 추구하겠는가. 괴테가 빛을 더 달라 한 것은 파우스트 2부 마지막에서처럼 새로운 세상으로 들려 올라가는 주인공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계몽'이란 말의 독일어를 직역하자면 '밝게함, 분명하게 함'이란 뜻과 통하는 독일인의 의식 세계를 반영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괴테가 살아가는 동안 늘 그리워하던 빛, 고향 나라의 어두움과 대비되는 그 빛에 대한 그리움과도 상통하는 이야기가 된다. 그가 이탈리아 여행 중에 쓴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탈리아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 당당하게 열린 열매 맺는 레몬 나무를 보면서 그는, 어두운 부엌에서 감자 깎는 독일인들을 생각한다. 그것은 고향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그가 본 고향은 햇빛 제대로 듣지 않는 나라였던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도 한국인들이 고국의 백만 촛불집회에 발맞추어서 연대하는 마음으로 모였다. 고국은 어둠의 질서가 수십 년 지배하였고 이제는 백만 이백만의 촛불이 일어나고 있다. 11월 12일 프랑크푸르트 첫 집회는 파울 광장에서 열렸다. 독일 현재 유학생들과 독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눌러앉은 생활인 몇 사람이 모여서 준비들 하였다. 준비 과정에서 동조하는 주변 동포들의 동조를 느끼게 되었다. 재외동포 글로벌 네트워크의 열기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11월 12일에 열릴 첫 집회 신고는 50명만 모여도 성공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미 첫 날 집회 시작할 무렵 100명 남짓 넘더니 이어 2백여 명이 되고 한시간 반 지나 양초를 나눌 때가 되어서는 준비한 250개 양초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다섯 시 쯤 파울스플랏츠를 출발하여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도심 큰 길과 괴테하우스 인근을 지나 구 오페라 광장으로 가는 길을 행진한 참석자들은 행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한 참석자는 자신이 센 바에 따르면 5백 명은 족히 넘었다고 한다. 집회에 드러내고 참석하기 곤란했거나 아주 바빴던 이들은 어둠 속 행진을 함께하고 사라지기도 하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구 오페라 광장 앞에서 이동 엠프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터져라 구호과 노래를 안내하던 참석자가 감격스런 마무리를 하였다. 아리랑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프랑크푸르트 첫 집회 마친 후 주최측은 원래 한 달 후에 실내에서 모여 영화 상영과 시국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며칠 가지 않아 여러 곳에서 전해 오는 정기 집회 요청에 따라 17일에 2차 집회를 급히 공지하였다. 하루 공지를 하여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나 70여 명 참석자가 오고갔다. 26일에 열린 3차 집회는 괴테 광장에서 열렸다. 괴테 동상 아래에는 "몽땅 처벌 독립 특검 조기 대선"이란 플래카드가 붙었다. 미술을 전공한 학생들의 디자인 제공과 전문 분야를 살린 집회 기여, 2세들의 독일인 상대 홍보활동 등 누가 일일이 떠맡기지 않아도 나누어 일을 꾸려 가는 프랑크푸르트 시국집회는 오늘도 이어진다. '민주, 평화, 투명성을 지향하는 프랑크푸르트 한인들'이란 주최단체명은 알고 보면 오로지 이 집회를 위해 이름 붙인 열린 네트워크이다. 


참조: https://www.facebook.com/DFTFrankfurterKoreaner/?fref=ts

11월 26일 3차 집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6o_fuX74k8https://www.facebook.com/DFTFrankfurterKoreaner/?fref=ts


특히 11월 29일 박근혜 3차 담화를 접한 한국인들은 국회에 진퇴를 맡기겠다고 한  박씨의 표현 그 자체보다 무능한 국회 아니 2백만 촛불의 존재를 하찮게 대하는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국회가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 국회는 과연 필요한 것인가? 그러한 의문이 대두되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였던 것처럼 대통령직을 꿰차고 있는 사람과 그 주변의 부패가 단지 그들만의 일이 아닌 것처럼, 행정부의 무능과 태만이 행정부만의 문제라 입법부의 문제였고 사법부의 문제였다. 혹자는 약점을 잡힌 국회의원들이 제 소신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라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어둠 투성이었다. 연속극 <펀치>에 나오는 회식과 은근 협박은 현실의 단면일 뿐이었고, <밀회>에 나오는 이상한 표식들은 작가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닫힌 현실의 틈으로 스며나온 소식이었다. 건너편 어둠 투성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최순실을 모른다고 주장한 김기춘도 거짓이었고 수십 년 세월을 권력의 어둠 속에서 인형 놀이를 해 온 중정, 안기부, 국정원은 모두 시민들의 피땀 어린 세금울 제멋대로 쓰고 돌아다녔다. 재외동포 사회에서는 "찍혔다"고 칭해지는 사람들에게 해괴한 소문이 돌기도 한다. 그렇지만 무엇이 두렵겠는가, 사람이 스스로 빛이 된다면...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아니

어둠 속을 거니는 것은
위험하다

눈 앞에 다가오는 생물의 실체를 알 수 없다. 환히 웃으며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다가올 때면 어둠에 쫓겨 그 헤드라이트 건너편으로 덥석 몸을 내맡기며 더한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어둠 속에서는 부딪히는 사물들의 선악을 구분할 수 없다. 어둠을 먹고 살찌는 괴물들만이 형체 없는 축제를 벌일 뿐이다.

어둠 속을 거니는 것은 위험하다.

갑자기 다가오는 헤드라이트의 손잡이를 되꺾어 

공작실을 속속들이 비추어내지 못하는 한 

어둠 속에서는 우리 모두 위험하다.


내가 위험하고 네가 위험하고

우리 가족이 우리 이웃이 위험하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불빛이 되어야 한다 
서로서로 불빛이 되어야 한다



4차 집회: 2016년 12월 3일 (토) 15시-17시

15시 중앙역 건너편 카이저 슈트라세에서 집결 / 17시에서 17시 30분 사이 괴테광장에서 해산


5차 집회: 2016년 12월 10일 (토) 15시-17시

15시 중앙역 광장 (Vorplatz) 집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