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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터키 쿠데타 이후

미국과 소련

터키 쿠데타 사건 이후



편집실




15일 밤 터키의 군부 쿠데타 소식은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에르도완 대통령이 망명했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으나 이튿날 에르도완은 복귀하였다. 이후 에르도완은 미국에 체류하는 정적 귤렌이 쿠데타를 조정하였다고 지목하고 3개월간 계엄을 선포하고 거센 숙청 작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작년 11월말에 시리아 인접 국경지대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시켜 러시아와 불편해진 관계는 회복되었다. 에르도완은 전투기 격추 사건이 이번 쿠데타 핵심인 세속주의 계열의 일이었다고 밝히며 푸틴에게 사과를 하였고 러시아는 터키 여행 금지령을 해제하였다. 

터키와 러시아 사이 화해가 된 것을 두고 쿠데타 정보를 에르도완이 푸틴에게 미리 받았다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쿠데타가 시도된 밤에 쿠데타 세력이 앙카라의 하늘에서 폭격을 하고 탱크가 민간인에게 발포한 사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쿠데타 시도의 밤에 잠시 언급된, 터키의 민주주의를 위한 쿠데타였다는 미국 방송은 인터넷에서 사라지고, 서구 언론의 논조는 에르도완의 쿠데타 자작설, 혹은 푸틴에게서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쿠데타를 원천 봉쇄한 것은 정적들을 모두 때려잡을 기회를 잡기 위한 것이라는 기회포착설을 바탕에 깔고 있다. 8월 3일 쥐드도이체 차이퉁에서는 수도 앙카라의 괴크페크 시장이 쿠데타가 일어난 밤에 쿠데타 군인들로 인해 부상입은 10대를 내세워 시내 투어를 하는 장면을 보도한 터키 신문을 비판적으로 인용하였다.


터키와 서유럽 사이에 생긴 균열


미국이 실제로 쿠데타의 배후세력인지 에르도완이 소련에게서 쿠데타 정보를 미리 제공받고서도 쿠데타가 일단 일어나도록 하여 빌미를 잡은 것인지 에르드완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자작극인지는 단순한 주장의 전달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독일 매체를 보면 미국이 쿠데타의 배후세력이라고 하는 에르드완측의 발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독일은 이미 터키 내의 언론 탄압 문제와 1차 대전 당시 독일과 함께 전범이었던 터키가 저지른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에 대한 역사청산문제를 거듭 언급하는 한편, 반 에르도완 정서를 쌓아 왔다. 2년 전에 사고로 3백 명이 죽었는데 선거에만 열중하는 에르도완을 풍자한 독일 노래와 동영상(NDR)에서부터 올해 봄 독일을 떠들썩하게 한 얀 뵈르메르만의 본격적인 “비방시”에 이르기까지 독일 저널리스트들이 터키의 탄압받는 저널리스트들에게 보여준 연대의식은 가히 눈물겨울 정도로 전투적이다 할 만했다. 세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저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세계의 많은 독재자 중에서 유독 이 인물을 낙점한 이유가 궁금해지는 것을 저어할 수 없다.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은 집착하면서 독일군의 우크라이나 학살은 언급하지 않았고 세계에서 언론 탄압이 일어나는 곳 중에서도 유독 터키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기 때문이다. 터키계 독일인이 각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터키의 일이 독일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다면 이 정도로까지 집중포화를 퍼부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 비교적 거세된 독일 주류 언론에서 보여준 반 에르도완 집중포화는 분명 놀라운 수준이었다. 미국의 독일총리 휴대폰 도청 사건 때에도 이렇게 집중하지는 않았다. 


터키와 소련의 접근


어쨌든 이번 사건 이후 터키는 소련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외세를 대리하는 “대리전”이라고 불리는 시리아 내전에서 소련은 아사드 정부군을 지원하고 터키는 반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쿠데타 사건 후 에르도완과 푸틴 사이의 화해 분위기를 두고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시리아 문제를 두고 새로운 합의가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전망이 나오기도 하지만 국제간 힘의 역학 관계로 볼 때 이 또한 쉽게 단언할 수는 없는가 보다. 

구드룬 하레르는 오스트리아 인터넷 신문 <스탄다르트> 8월 9일자 기사 <터키 러시아 접근 - 수정이냐 전환이냐>에서 터키는 서유럽보다는 러시아와 손을 잡은 것이 지분을 챙기기 낫다고 판단을 하였다고 분석하였다. 하지만 소련의 관심과 터키의 관심이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점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터키가 지난 몇 년 보여 준 신오스만 정책, 즉 중동 지역에서 터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지향점을 소련이 모를 리 없다고 하면서 소련은 우선 미국과 타협을 해야 하는 처지라는 점도 언급했다. 

이제 명실공히 반서구세력이 된 신(Neo)오스만주의자들이 미국, 서구과 소련 외의 제3의 세력으로 떠오를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내전 전쟁터로 전락할 것인가?


(풍경 78호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