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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재정 의원님께 드리는 공개편지

이재정 국회의원님,

 

얼마 전, 국정감사 동영상에서 의원님께서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 금창록 총영사님에게 질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이 답답해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만, 그런 의원님의 모습을 보며 저 또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이렇게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해당 동영상은 이것입니다. youtu.be/acrNfj20--w

 

 

제 이름은 이은희이며, 프랑크푸르프에 40년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고향은 한국이고 모국어도 한국어이지만 사유방식은 때로 독일 생활의 세례를 많이 받은 흔적이 있으니 그런 점을 감안하고 아래 글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프라이부르크에서 소녀상 건립 계획이 있을 때 수원 건립추진위 집행위원장에게서 연락을 받고 서포터팀을 중부지역에 조직할 준비를 하다가 건립계획이 취소된 후, 그 상태를 용인할 수 없어 독일 전역의 시민단체와 제가 운영하던 신문의 독자들에게 연락하여 독일 추진위를 조직하였습니다.

 

추진위 발족 후에는 추진위 추용남 대표의 요청으로 사무국장 임명을 받고 2017년 3월 건립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래서 의원님께 사실관계 이해를 도와 드리기 위해 해당 동영상 아래 댓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댓글이 묻힌 것 같아 이렇게 공개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라벤스브뤼크는 베를린 부근에 있습니다>

 

동영상을 보니 정보의 오류가 있는 것 같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 관할에서는 소녀상이 철거된 적이 없습니다.

 

의원님이 언급하시는 '라벤스부르크'란 곳은 아마도 '레겐스부르크''라벤스브뤼크'가 혼돈된 것 같습니다. '레겐스부르크'는 바이에른주에 있는 도시로서 이 도시 인근에 비젠트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소녀상은 비문이 없습니다. 20175월이라면 이미 첫 소녀상을 건립한 건립추진위원회 내에서 베를린 지역 분들과 루르 지역 분들이 주도하여 레겐스부르크 인근에 있는 첫 소녀상을 비문 없이 두기로 확정한 시점입니다.

 

'라벤스브뤼크'란 곳은 베를린 근교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곳에 있는 여성강제수용소에 코리아 협의회 대표가 평화의 소녀상 미니어처를 선물해서 전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점이 20175월인지, 6개월 후에 철거된 것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레겐스부르크 인근 비젠트 네팔 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에 소녀상이 비문 없이 서 있게 된 것에는 물론 일본의 개입이 첫째이지만, 그 전개과정에서 당시 건립 추진위 내에서 의견의 일치가 불가능하였고 또 일각에서 성급히 비문 취소 혹은 수정을 들고 나선 것도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확인해 드립니다.

 

당시 실제로 일을 해 온 사무국과 실무팀들은 일단 협상(타협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우리쪽 입장을 밝히며 비문을 유지하고, 그것이 불가하면 공원이 휴장하는 시기인 10월까지 다른 장소를 구해 보는 것, 혹은 회수하여 프랑크푸르트로 가져와서 여론전을 펴는 가능성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4월에 소집한 회의에서 그렇게 공유하였습니다. 하지만 비문이 없더라도 공원에 그대로 두자는 목소리가 컸기에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컸다는 뜻)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의원님은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 산하의 소녀상이 그렇게 비문 철거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베를린이 힘들다고 하시는데, 3년 7개월 전 그때도 이번 베를린처럼 모두 뜻을 모아서 일본의 개입을 문제 삼았다면 역사가 몇 년은 일찍 진전되었을까요?

 

<타국의 정부는 독일 민간단체의 일에 개입하여서는 안 된다>

외 소녀상 건립 문제는 한국에서의 그것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저는 4년 전 소녀상 건립활동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독일땅에 서는 소녀상에 대해 일본 정부가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입니다. 외국 공관의 로비에 따라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가 제재 받은 사실이  프라이부르크에서 거부당한 소녀상을 독일로 가져와야 할 이유였습니다.

 

한국을 대표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해외 소녀상 전시와 건립 활동은 한국을 대표해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 내의 특정 단체를 대표하는 일도 더더욱 아닙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일본군국주의에 의해 학대받고 죽임당한 영혼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잊혀져서는 안 될 세계사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원님의 역사의식과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할 것 같지만 소녀상 건립이나 전시 활동은 이 곳 독일 사회의 맥락에서 논리를 펴고 주장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사안입니다. 일본 정부가 끼어든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외교전을 펼치면 그건 바로 한일전이 되는 것입니다. 정작 그것은 소녀상 건립이나 '위안부' 체제에 대한 알림 활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마음 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에는 어려운 과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경험을 통해 잘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어려운 순간들에 대해 무조건 남의 탓만 하고 있으면 언제나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해외에서 소녀상 건립을 하는 과정에서 외적인 조건도 있지만 내적인 조건 즉 파트너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상황을 알려드리는 일, 파트너의 철학과 신념에 대한 깊은 이해 등이 갈수록 더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내에서 해외 모습을 보면 쉽게 인과관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국외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단정보다는 국내의 '위안부' 부정 하는 무리들에 대해 단속을 잘 해 주시고, 또 자라는 학생들이 역사 사실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정부측에서는 끊임없이 비문에 역사사실이 올라가는 것을 지우려 하고 있습니다.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보면 타협도 쉽사리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오히려 지금 다시 비문을 둘러싸고 타협 논의가 나오는 것이 염려스럽습니다.

 

20173월 비젠트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는 우리 한국인 사회 안에서 비문이 없어도 괜찮다고 강렬하게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비젠트 소녀상이 비문 없이 서 있게 된 것에는 일본의 개입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인들의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보다 훨씬 북쪽이나 훨씬 동북쪽에 사시는 분들이 강력히 주장하신 일이었습니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의원님께서 상황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왜 그렇게 진행되었는지는 여기서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그때까지 일을 보았던 실무팀과 사무국장은, 주장도 해보지 못하고 시간도 끌지 못하고 타협한 추진위 결과에 동조할 수 없었습니다. 비문 있는 소녀상을 세우겠다 하고 이미 사실상 무력화된 사무국 사퇴를 선언하였습니다.

 

<소녀상 건립 혹은 전시의 의미>

 

20178월에 본에 건립후보지가 생겼습니다. 비문 없는 소녀상은 이미 추진위에서 그대로 세워두기로 결정한 다음이었습니다. 첫 소녀상 때처럼 전국적으로 추진위를 조직하지 않고 같은 해 12월에 풍경세계문화협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지난날의 경험에 근거한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20188월로 정해진 건립지도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무산되었습니다. 그 후 게릴라 전시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우리 운영위원회에서는 이런 무산 과정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파트너의 신념과 철학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였습니다. 쉬운 말 같지만 어렵고 어려운 듯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실패는 다음 성공의 산파가 되는 것이지요.

 

의원님은 왜 해외에 소녀상을 건립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동영상에서 의원님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실패'(?)가 오늘날 베를린의 어려움의 근원이 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프랑크푸르트 지역에서 실패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철거논란이 있다는 말씀도 무엇을 두고 하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래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감확장의 과정을 살펴보시고 독일 내 활동에 대해 좀더 폭넓게 생각하시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본에 세우기 위해 들여온 두번째 소녀상은 2018년 8월부터 6주간 함부르크의 독일 개신교 북독일노회 회관, 20191028일부터 2020114일까지 독일림부르크 교구 산하 교육문화센터인 프랑크푸르트 하우스 암 돔, 2020219일부터 내년 1월까지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 총학생회와 나치 시대 교육학 연구소와 함께 대학교 사회학관에 소녀상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시를 통해 현지인들과의 대화가 이어지며 공감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보기엔 소녀상이 곳곳에 영구건립되는 것이 어떤 승리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건립과 한일 대립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은 의원님도 동의하실 것입니다. 해외 상황에서 한인 이주민, 일본인 이주민, 그 외 이주민들의 역사인식과 교육과정과 상태에 대한 섬세한 배려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지난 4년간 <평화의 소녀상>과 관련된 기록은 이번 베를린 사건 이전까지 에세이 형태로 정리된 것을 이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kyeol.kr/node/237 () http://www.kyeol.kr/node/238 ()

 

너무 마음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너는 틀렸다”, “너는 안 될 일을 주장한다” 라고 하지 않으면 합니다의원님도 그런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아주 부당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는지요 ?

 

어려운 일도 원칙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은 결과를 만날 것이라고 전 믿고 있습니다. 좀 더디더라도 공정하면 행복한 시간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의원님의 의정활동에도 그렇게 공정하고 행복한 일이 많길 기원합니다.

 

20201024

풍경세계문화협회

대표 이은희 드림

 

https://www.punggyeong.org/

https://ko.punggyeong.org/ (한글)

현재 전시 중인 대학 전시 오프닝 보도 (유로저널)

http://eknews.net/xe/euro_special/553073

 

 

함부르크 전시 (독일 개신교단 북독일노회) 20188-9

https://www.nordkirche.de/nachrichten/nachrichten-detail/nachricht/hamburger-kirchenzentrum-zeigt-kunst-gegen-sexuelle-gewalt/

프랑크푸르트 첫 전시 (하우스 암 돔) / 림부르크 교수 홈페이지 소개 201910-20201월 전시

https://frankfurt.bistumlimburg.de/beitrag/eine-maedchenstatue-fuer-den-frieden/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신문 20202월 대학전시 소개 (현재 내년 1월까지 연장전시)

https://www.faz.net/aktuell/rhein-main/frankfurter-uni-campus-westend-erinnert-an-trostfrauen-16627847.html

프랑크푸르트 저널 20202월 소개 기사

https://www.journal-frankfurt.de/journal_news/Kultur-9/Trostfrauen-Eine-Maedchenstatue-fuer-den-Frieden-35358.html

 

코로나 임프레션

https://vimeo.com/414292903

 

 

2019년 10월 28일 프랑크푸르트 하우스암돔 오프닝에서 요아힘 발렌틴 관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이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