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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어떤 그릇? 대통령은 되었지만 해외에 나가면 달걀 세례가 두려운 사람이 있었다. 공항에서 달걀 세례 대신 환영식 같은 것을 치루기 위해 자문위원단이란 것이 꾸려졌다. 통일과는 아무런 상관 없지만 통일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체육관에 모여 선거를 하던 그들의 감투에도 통일이란 이름이 붙었다. 겨울에 조기대선을 외친 사람들이 국내 수백만은 되었고 그 조기대선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통일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회의는 성황이다. 유럽이든 미주든 곳곳에서 정권은 바뀌었지만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그곳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불평이 한창이다. 고쳐서 쓸 것이 있고 버려야 할 것이 있고 아예 두들겨서 새 그릇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 있다. 이란 그릇은 어떤 경우일까? 고쳐서 쓸 것을 버리는 것.. 더보기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란 무엇인가 수원시민들이 선물한 평화의 소녀상, 비젠트에 건립 풍경 2016년 9월, 수원시와 수원시 자매도시인 프라이부르크 간 프로젝트로 추진되던 프라이부르크 소녀상 건립 계획이 무산되었다. 일본의 방해가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일본의 꼼꼼한 방해로 인해 부담이 커진 잘로몬 프라이부르크 시장이 수원 측에 건립 계획 취소를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수원의 활동가들에게는 그간 준비해 온 일들이 물거품이 되는 듯한 허탈한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반 년 후 2017년 3월 8일에 독일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었다. 독일의 활동가들은 그렇게 무산된 소녀상 건립 사안이 실패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지로 “독일평화의소녀상 독일건립추진위원회”(이하 독일 건추위)를 구성하였으며 10월 5일에 독일을.. 더보기
“왜?” - 세월호 참사 천 일에 다시 생각하는 “왜?”라는 질문 사진 정혜선 “왜?”라는 질문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일어나는 질문이다. 왜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 했는가? 왜 그들은 침몰하는 배 속에 아이들을 그대로 두었는가? 왜 그들은 여전히 침묵하는가? 왜 그들은 여전히 그렇게 뻔뻔스러운가? 1월 7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천 일 집회에서 세월호 기억 노란 우산 프로젝트 “왜?”가 펼쳐졌다. 하팅엔에 거주하는 현지 중견 조각가 강진모 씨가 구성했다. 세월호은 우리 사회의 원죄이다. 천일이 되도록 “왜?”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는 우리는 그 “왜?”라는 질문을 다르게 내놓아야 할 것 같다. 왜 우리는 여전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가?왜 우리는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는가? 왜 우리는.. 더보기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박근혜 내려오고 세월호 올라오라"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 - 프랑크푸르트에 세월호 천 일 집회- 강진모 조각가, 하얀 세월호 모형 제작, 노란 우산 프로젝트 세월호 침몰 천 일이 되는 1월 9일을 이틀 앞두고 재외동포사회에서는 세월호 천 일 집회를 갖는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세월호에 몰두하게 하는가, 그것은 슬픔만은 아닐 것이다. 슬픔이 분노로 변하고 분노가 다시 현실인식으로 전이될 때 우리는 희망의 불빛 혹은 무엇을 우리가 꼭 쟁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응시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강진모 조각가가 이번 프랑크푸르트 천 일 집회를 위해 제작한 하얀 모형배에 쓰인 문구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인양하라"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강진모는 세월호 배를 하얀 배로 만들었다. 세월호가 원래 하얀색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노.. 더보기
비엔나에 타오른 촛불 민심 글 현정원 (오스트리아 빈) 박근혜의 3차 대국민 담화 이후 탄핵 정국이 요동 친 12월 첫 주 토요일, 한국에는 헌정 사상 최대 232만 명의 촛불이 타올랐다. 한국 시간 자정 즈음 한국 촛불이 잦아들 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오페라 하우스 옆 광장에는 전자초, 양초, 피킷, 세월호 추모 노란 종이배 등을 자발적으로 준비한 백여 명 현지 교표들이 모여 박근혜 퇴진과 피해자들을 위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촛불을 이어갔다. 그간 한국 정치의 여러 굴곡에도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해 왔던 오스트리아 교포 사회에 촉발된 사상 최초의 촛불 집회라는 점에서 현 시국의 엄중함을 볼 수 있었다. 학생, 주부, 회사원, 자영업자들로 구성된 집회 참가자들은, 대한민국의 실종된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는 선언문으로 시작하여 .. 더보기
[프랑크푸르트 시국집회 후기] 사람이 빛이다 프랑크푸르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말 중에 괴테의 마지막 발언이 들어 있다. 프랑크푸르트 한인들 박근혜 퇴진요청 3차 집회가 괴테광장에서 열린 김에 잠시 그 생각을 해 본다. "좀더 빛을!"(Mehr Licht!) 란 말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중심에서 태어나고 세례를 받은 괴테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구분이 없이 다양한 학문 분야를 섭렵하고 당대의 성공과 명예를 누렸으나 세상을 떠날 때 뭔가 아쉬웠던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죽을 때 한 말 "좀더 빛을!"(Mehr Licht!)이란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란 오스트리아 작가는 괴테가 한 말이 "좀더 빛을!"이란 뜻이 아니라 "불편해"(Mir liegt´s schlecht.)란 말이었는데 잘못 회자되.. 더보기
평화 소녀 독일 상륙 평화 소녀 독일 상륙12월 10일, 유엔이 정한 국제인권기념일에 프라이부르크 도심에 건립 소녀들의 이름은 많다. 지난 80여 년이 그들을 이렇게 저렇게 불렀다. 일본군들은 그들에게 “천황”이라는 존재가 내려준 “하사품”이라고 했다. 아티스트 김인옥은 올해 봄 하이델베르크 게독 전시회에서 그러한 발상으로 인간 존재에 어떤 비인간적 도발이 가해졌는지를 형상화하였다. 그들은 또 “위안부”라 했다. 전장에서 군인들에게 “위안”을 준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소녀들은 “노예생활”을 살아야 했고 조선인 소녀들은 “포로”였다. 그동안 정신대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의 활동을 통해 오늘날은 “위안부”란 이름을 쓸 때는 반드시 따옴표를 쓰게 되었다. 한편, 실질적인 표식 “성노예”라는 사실상 표현을 쓸 때는 할머니가 된 소녀.. 더보기
터키 쿠데타 이후 미국과 소련터키 쿠데타 사건 이후 편집실 15일 밤 터키의 군부 쿠데타 소식은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에르도완 대통령이 망명했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으나 이튿날 에르도완은 복귀하였다. 이후 에르도완은 미국에 체류하는 정적 귤렌이 쿠데타를 조정하였다고 지목하고 3개월간 계엄을 선포하고 거센 숙청 작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작년 11월말에 시리아 인접 국경지대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시켜 러시아와 불편해진 관계는 회복되었다. 에르도완은 전투기 격추 사건이 이번 쿠데타 핵심인 세속주의 계열의 일이었다고 밝히며 푸틴에게 사과를 하였고 러시아는 터키 여행 금지령을 해제하였다. 터키와 러시아 사이 화해가 된 것을 두고 쿠데타 정보를 에르도완이 푸틴에게 미리 받았다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쿠데타가 시도된 밤에 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