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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독일어 수업 안내 풍경 문화원에서는 신학기를 맞아 어머니들을 위한 독일어 강좌를 다음과 같이 개설합니다. 1. 진짜 왕초보 독일어: 9월 4일부터 (수업장소: 오버우르젤)2. 적당 초보 독일어: 9월 11일부터 (수업장소: 프랑크푸르트)3. 80시간 이미 공부한 초보들을 위한 독일어: 11월부터 (수업장소: 프랑크푸르트) 그 외 B1 인증시험, 청소년 독일어 문의 받습니다. 매주 일요일에는 오버우르젤에서 기타 수업 있을 예정입니다. 자세한 것은 cafe.naver.com/punggyeonglandschaft 참조 더보기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란 무엇인가 수원시민들이 선물한 평화의 소녀상, 비젠트에 건립 풍경 2016년 9월, 수원시와 수원시 자매도시인 프라이부르크 간 프로젝트로 추진되던 프라이부르크 소녀상 건립 계획이 무산되었다. 일본의 방해가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일본의 꼼꼼한 방해로 인해 부담이 커진 잘로몬 프라이부르크 시장이 수원 측에 건립 계획 취소를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수원의 활동가들에게는 그간 준비해 온 일들이 물거품이 되는 듯한 허탈한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반 년 후 2017년 3월 8일에 독일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었다. 독일의 활동가들은 그렇게 무산된 소녀상 건립 사안이 실패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지로 “독일평화의소녀상 독일건립추진위원회”(이하 독일 건추위)를 구성하였으며 10월 5일에 독일을.. 더보기
“왜?” - 세월호 참사 천 일에 다시 생각하는 “왜?”라는 질문 사진 정혜선 “왜?”라는 질문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일어나는 질문이다. 왜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 했는가? 왜 그들은 침몰하는 배 속에 아이들을 그대로 두었는가? 왜 그들은 여전히 침묵하는가? 왜 그들은 여전히 그렇게 뻔뻔스러운가? 1월 7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천 일 집회에서 세월호 기억 노란 우산 프로젝트 “왜?”가 펼쳐졌다. 하팅엔에 거주하는 현지 중견 조각가 강진모 씨가 구성했다. 세월호은 우리 사회의 원죄이다. 천일이 되도록 “왜?”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는 우리는 그 “왜?”라는 질문을 다르게 내놓아야 할 것 같다. 왜 우리는 여전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가?왜 우리는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는가? 왜 우리는.. 더보기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박근혜 내려오고 세월호 올라오라"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 - 프랑크푸르트에 세월호 천 일 집회- 강진모 조각가, 하얀 세월호 모형 제작, 노란 우산 프로젝트 세월호 침몰 천 일이 되는 1월 9일을 이틀 앞두고 재외동포사회에서는 세월호 천 일 집회를 갖는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세월호에 몰두하게 하는가, 그것은 슬픔만은 아닐 것이다. 슬픔이 분노로 변하고 분노가 다시 현실인식으로 전이될 때 우리는 희망의 불빛 혹은 무엇을 우리가 꼭 쟁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응시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강진모 조각가가 이번 프랑크푸르트 천 일 집회를 위해 제작한 하얀 모형배에 쓰인 문구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인양하라"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강진모는 세월호 배를 하얀 배로 만들었다. 세월호가 원래 하얀색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노.. 더보기
12월 28일, 동백림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 고 강혜순 여사 장례 12월 28일 프랑크푸르트 근교 호이젠슈탐 시립공원묘지. 독일 전역에서 모인 동포들이 고 강혜순 여사를 떠나보내는 예식을 올렸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불렀던 노래, 윤극영의 이 울려퍼졌다. 손녀가 가야금을 뜯고 참석자들을 노래를 함께 불렀다. 상주는 다름슈타트 음악 아카데미 정일련 선생이다. 어머님이 애창하시던 노래라 했다. 을 좋아했다는 고 강혜순 여사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소녀시절을 보내고 한국 전쟁 의 어려운 시기를 지난 후 장학생으로 독일에 온 약혼자 정규명 선생을 따라 1962년에 독일로 왔다. 1967년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세 살 아들과 남편과 함께 한국에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한민족유럽연대 최영숙 의장은 조사에서, 세 .. 더보기
비엔나에 타오른 촛불 민심 글 현정원 (오스트리아 빈) 박근혜의 3차 대국민 담화 이후 탄핵 정국이 요동 친 12월 첫 주 토요일, 한국에는 헌정 사상 최대 232만 명의 촛불이 타올랐다. 한국 시간 자정 즈음 한국 촛불이 잦아들 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오페라 하우스 옆 광장에는 전자초, 양초, 피킷, 세월호 추모 노란 종이배 등을 자발적으로 준비한 백여 명 현지 교표들이 모여 박근혜 퇴진과 피해자들을 위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촛불을 이어갔다. 그간 한국 정치의 여러 굴곡에도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해 왔던 오스트리아 교포 사회에 촉발된 사상 최초의 촛불 집회라는 점에서 현 시국의 엄중함을 볼 수 있었다. 학생, 주부, 회사원, 자영업자들로 구성된 집회 참가자들은, 대한민국의 실종된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는 선언문으로 시작하여 .. 더보기
[프랑크푸르트 시국집회 후기] 사람이 빛이다 프랑크푸르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말 중에 괴테의 마지막 발언이 들어 있다. 프랑크푸르트 한인들 박근혜 퇴진요청 3차 집회가 괴테광장에서 열린 김에 잠시 그 생각을 해 본다. "좀더 빛을!"(Mehr Licht!) 란 말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중심에서 태어나고 세례를 받은 괴테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구분이 없이 다양한 학문 분야를 섭렵하고 당대의 성공과 명예를 누렸으나 세상을 떠날 때 뭔가 아쉬웠던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죽을 때 한 말 "좀더 빛을!"(Mehr Licht!)이란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란 오스트리아 작가는 괴테가 한 말이 "좀더 빛을!"이란 뜻이 아니라 "불편해"(Mir liegt´s schlecht.)란 말이었는데 잘못 회자되.. 더보기
조정래 감독의 "귀향" 더보기